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이 공연은 김광석이 처음으로 대규모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의 이름 석자가 대중들에게 아로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정상에 섰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음색의 채도 정도가 살짝 차이가 있을 뿐. 힘과 떨림, 감정과 표현은 이미 당대를 넘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광석. 낯선 이름이었으되 강렬한 목소리였다. 김광석이 보컬을 맡았던 동물원의 노래들은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에 세상을 돌파할 수 있는 최상의 무기였다. 거리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변해가네, 2집에 수록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이 바로 그런, 실패를 몰랐던 노래들이었다. 주로 대학로 소극장에서 열렸던 동물원의 공연은 전회 매진에 가까운 흥행을 올렸으며, 김광석의 목소리가 떨릴 때 관객의 마음도 떨렸다.


88년 한 해 동안 내놓은 동물원의 두 장 앨범을 끝으로, 그는 홀로 서기를 시도한다. 1989년
기다려줘와 너에게를 담은 솔로 앨범을 내놓은 것이다. 기타 한 대만 들고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었던 김광석은 곧 대학 축제의 단골 초대 손님이 됐고, 민중가요가 지배하던 대학 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김광석이란 대학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으며, 운동권과 일반 학생을 연결하는 가교였다.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이 담긴 2집은 그런 김광석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작품이었다.

하는 음악은 달라도, 음악을 하는 때는 달라도 김광석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은 뮤지션은 없을 것이다. 어느 가수보다 꾸준히 매년 추모 공연이 열리고, 한국 음악계를 주름잡는 이들은 마다하지 않고 그 무대에 서곤 했다. 또한 여러 차례 트리뷰트 앨범이 제작되곤 했다. 동료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앨범이 있었고, 김광석의 목소리에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덧입힌 기획 앨범도 있었다. 공연이건 앨범이건, 생전 김광석이 활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화제가 되곤 했다. 아마 이 땅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김광석에 대한 재해석.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김광석이 떠난 1996년 한국 대중음악계는 급속도로 기획사 중심의 시스템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음반 시장의 침체와 함께 자기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사실상 홍대 앞을 제외하면 데뷔하기조차 힘든 형국이 됐다. 90년대에만 해도 이른바 메이저에서 영역을 갖고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자기 음악과 인디는 사실상 동의어인 셈이다.
<김광석 다시 듣기>는 김광석이 그러했듯, 지금 자신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참가한 앨범이다. 김바다 정도를 제외한다면, 아마 생전의 김광석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을 까마득한 후배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김광석 트리뷰트 앨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욱 가치 있다. 동료가 아닌 영향이라는 자장에서 지금 여기서 김광석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장이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음악이었을 김광석을 현역 뮤지션이 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소화할까. 이 앨범이 기획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유년기의 음악으로 김광석을 접했을 세대는, 동시대 뮤지션들이 부르는 김광석을 어떻게 받아 안을까. 한 곡 한 곡, 따라가다 보면 그 해답이 나올지 모르겠다.
글쓴이:김작가
<곡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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