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15주기를 떠올리며,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유니온프레스=원호성 기자] 박찬욱 감독의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난 전국 600만 관객들의 뇌리에는 아마도 영화 자체보다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가 더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2011년 1월 6일, 가객(歌客) 김광석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도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광석이 없는 세상에서 애절한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중얼거리던 말이 함께 떠오른다.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공동경비구역 JSA> 남과 북을 이어주는 비가(悲歌)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1990년대 군대에 가는 남자들을 위한 노래는 김민우가 부른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19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모았던 김민우는 ‘입영열차 안에서’를 통해 스타가 되었고, 본인의 노래가사처럼 몇 년 후 머리를 짧게 자른 채 논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한 이후 그 흐름이 변했다. ‘입영열차 안에서’ 대신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그 전에도 불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6년 김광석이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후 그의 이른 죽음을 아쉬워 하듯 김광석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2000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나온 것이다.
한국군 병사와 북한군 병사들이 둘러앉은 작은 북한군 초소 내에 ‘이등병의 편지’의 차분한 하모니카 전주가 흐르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는 부모님께 편지나 한 통씩 쓰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은 “정말로 전쟁이 나면 우리도 서로 쏴야 되나?”라고 씁쓸하게 묻는다.
잠시 후 ‘이등병의 편지’에서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라는 가사가 흐르자 오경필 중사는 김광석에 대해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오마니 생각 나누마.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이어서 그는 남과 북이 함께 김광석의 이른 죽음에 대해 추모를 하자고 제의한다. “야! 야! 우리 광석일 위해 딱 한 잔만 하자우”
김광석의 음악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어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그들이 서로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한반도의 청년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음악을 대표하는 전주 부분의 하모니카 연주 역시 끊어질 듯이 가볍게 떨리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타의에 의해 친구가 아닌 원수가 되어야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에 대한 정(情)을 끊을 수 없는 인물들의 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해주는 소재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김광석의 음악이 가장 극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은 북한군 초소에 있던 남한 병사들이 북한군 장교에게 발각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은 과감하게도 총알이 빗발치는 이 장면에서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넣어서 감정적인 파급력을 더욱 배가시킨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 쓰러져서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보는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의 얼굴을 직부감으로 내려다보면서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의 절정인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는 가사가 흐르는 순간 결국 친구가 아닌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가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더욱 비극적으로 승화된다.
<클래식> 운명이 허락하지 않는 슬픈 연인들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는 군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등장한다. 준하(조승우 분)와 주희(손예진 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김광석의 4집에 수록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준하가 주희를 남겨놓은 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주희는 집안이 정한 약혼자인 태수(이기우 분)에게서 준하가 베트남으로 간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기차역으로 달려가 준하를 찾는다. 결국 열차에 탄 준하를 발견한 주희는 창문을 두드리며 준하를 부르지만, 준하는 자신의 마음이 약해질까봐 끝내 주희를 돌아보지 않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낸다.
이 장면에서 삽입되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을 할 수 없는 준하와 주희의 처지를 설명해주는 동시에,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길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 가사를 통해 앞으로도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비극적인 복선으로 함께 기능한다.
음악 선곡이 유난히 탁월했던 영화 <클래식>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곡은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과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두 곡이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며 준하와 주희의 슬픈 사랑을 보며 가슴 깊숙이 숨겨놓은 울음을 함께 터트린 관객이라면 결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도마뱀> 너의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그녀가 처음 울던 날’
<클래식>에 출연했던 조승우는 김광석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 배우이기도 하다. 강혜정과 함께 출연한 영화 <도마뱀>에서 조승우는 직접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도마뱀>의 아리(강혜정 분)와 조강(조승우 분) 역시 <클래식>의 준하와 주희처럼 이어질 듯싶지만 쉽게 이어지지 않는 관계. 영화의 후반부에서 조강이 아리가 지닌 슬픔을 알게된 후 그녀를 위해 불러주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역시 <클래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을 드러내는 노래다.
“이제는 볼 수가 없네, 그녀의 웃는 모습을.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라는 노래의 가사는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돌아서는 아리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둘의 사랑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조강의 슬픈 심정을 백 마디 대사보다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영화의 슬픔을 더욱 배가시킨다.
특히 이 노래가 삽입된 배경에는 ‘조강’을 연기한 조승우의 강력한 요청이 있기도 했다. 시나리오 상에는 어린 시절 조강이 아리에게 불러주던 노래인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것이었지만, 조승우의 요청으로 <도마뱀>에 출연한 인물들의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 이 장면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세 편의 영화 이외에도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짝사랑했지만 말 한 마디 못 붙여보고 보내야 했던 광식(김주혁 분)이 7년 만에 짝사랑하던 그녀 윤경(이요원 분)을 다시 만나던 순간에 흐르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도시를 그리워하며 시골 마을에 정을 안 붙이는 혜진(엄정화 분)에게 라이브 카페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홍반장(김주혁 분)이 불러주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역시 영화에 등장한 잊을 수 없는 김광석의 노래다.
김광석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절절하게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어쩌면 그가 젊은 나이에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그가 자신의 음악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듣기만 해도 괴롭고 슬픈 감정이 되살아나는데, 그 음악을 만든 이는 오죽했겠냐는 말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극심한 감정적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 꼭 김광석의 음악이 등장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노래가 있지만, 김광석의 음악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차분한 멜로디와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헤짚어 놓는다. 영화에서 수없이 진부한 대사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오직 김광석의 노래 하나만으로 충분히, 더욱 감성적으로 다듬어진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도 15년, 뒤늦게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처럼 뒤늦은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김광석은 없어도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음악으로, 영화로 계속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김광석이라는 걸출한 가객(歌客)은 비록 없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15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죽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 말이다.
2011년 1월 6일, 가객(歌客) 김광석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도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광석이 없는 세상에서 애절한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중얼거리던 말이 함께 떠오른다.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공동경비구역 JSA> 남과 북을 이어주는 비가(悲歌)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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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군대에 가는 남자들을 위한 노래는 김민우가 부른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19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모았던 김민우는 ‘입영열차 안에서’를 통해 스타가 되었고, 본인의 노래가사처럼 몇 년 후 머리를 짧게 자른 채 논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한 이후 그 흐름이 변했다. ‘입영열차 안에서’ 대신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그 전에도 불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6년 김광석이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후 그의 이른 죽음을 아쉬워 하듯 김광석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2000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나온 것이다.
한국군 병사와 북한군 병사들이 둘러앉은 작은 북한군 초소 내에 ‘이등병의 편지’의 차분한 하모니카 전주가 흐르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는 부모님께 편지나 한 통씩 쓰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은 “정말로 전쟁이 나면 우리도 서로 쏴야 되나?”라고 씁쓸하게 묻는다.
잠시 후 ‘이등병의 편지’에서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라는 가사가 흐르자 오경필 중사는 김광석에 대해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오마니 생각 나누마.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이어서 그는 남과 북이 함께 김광석의 이른 죽음에 대해 추모를 하자고 제의한다. “야! 야! 우리 광석일 위해 딱 한 잔만 하자우”
김광석의 음악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어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그들이 서로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한반도의 청년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음악을 대표하는 전주 부분의 하모니카 연주 역시 끊어질 듯이 가볍게 떨리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타의에 의해 친구가 아닌 원수가 되어야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에 대한 정(情)을 끊을 수 없는 인물들의 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해주는 소재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김광석의 음악이 가장 극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은 북한군 초소에 있던 남한 병사들이 북한군 장교에게 발각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은 과감하게도 총알이 빗발치는 이 장면에서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넣어서 감정적인 파급력을 더욱 배가시킨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 쓰러져서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보는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의 얼굴을 직부감으로 내려다보면서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의 절정인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는 가사가 흐르는 순간 결국 친구가 아닌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가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더욱 비극적으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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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는 군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등장한다. 준하(조승우 분)와 주희(손예진 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김광석의 4집에 수록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준하가 주희를 남겨놓은 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주희는 집안이 정한 약혼자인 태수(이기우 분)에게서 준하가 베트남으로 간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기차역으로 달려가 준하를 찾는다. 결국 열차에 탄 준하를 발견한 주희는 창문을 두드리며 준하를 부르지만, 준하는 자신의 마음이 약해질까봐 끝내 주희를 돌아보지 않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낸다.
이 장면에서 삽입되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을 할 수 없는 준하와 주희의 처지를 설명해주는 동시에,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길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 가사를 통해 앞으로도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비극적인 복선으로 함께 기능한다.
음악 선곡이 유난히 탁월했던 영화 <클래식>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곡은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과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두 곡이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며 준하와 주희의 슬픈 사랑을 보며 가슴 깊숙이 숨겨놓은 울음을 함께 터트린 관객이라면 결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도마뱀> 너의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그녀가 처음 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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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출연했던 조승우는 김광석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 배우이기도 하다. 강혜정과 함께 출연한 영화 <도마뱀>에서 조승우는 직접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도마뱀>의 아리(강혜정 분)와 조강(조승우 분) 역시 <클래식>의 준하와 주희처럼 이어질 듯싶지만 쉽게 이어지지 않는 관계. 영화의 후반부에서 조강이 아리가 지닌 슬픔을 알게된 후 그녀를 위해 불러주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역시 <클래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을 드러내는 노래다.
“이제는 볼 수가 없네, 그녀의 웃는 모습을.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라는 노래의 가사는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돌아서는 아리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둘의 사랑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조강의 슬픈 심정을 백 마디 대사보다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영화의 슬픔을 더욱 배가시킨다.
특히 이 노래가 삽입된 배경에는 ‘조강’을 연기한 조승우의 강력한 요청이 있기도 했다. 시나리오 상에는 어린 시절 조강이 아리에게 불러주던 노래인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것이었지만, 조승우의 요청으로 <도마뱀>에 출연한 인물들의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 이 장면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세 편의 영화 이외에도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짝사랑했지만 말 한 마디 못 붙여보고 보내야 했던 광식(김주혁 분)이 7년 만에 짝사랑하던 그녀 윤경(이요원 분)을 다시 만나던 순간에 흐르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도시를 그리워하며 시골 마을에 정을 안 붙이는 혜진(엄정화 분)에게 라이브 카페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홍반장(김주혁 분)이 불러주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역시 영화에 등장한 잊을 수 없는 김광석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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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절절하게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어쩌면 그가 젊은 나이에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그가 자신의 음악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듣기만 해도 괴롭고 슬픈 감정이 되살아나는데, 그 음악을 만든 이는 오죽했겠냐는 말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극심한 감정적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 꼭 김광석의 음악이 등장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노래가 있지만, 김광석의 음악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차분한 멜로디와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헤짚어 놓는다. 영화에서 수없이 진부한 대사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오직 김광석의 노래 하나만으로 충분히, 더욱 감성적으로 다듬어진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도 15년, 뒤늦게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처럼 뒤늦은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김광석은 없어도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음악으로, 영화로 계속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김광석이라는 걸출한 가객(歌客)은 비록 없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15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죽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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