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이야기/음악이야기

[스크랩] Antonio Vivaldi

즐락지기 2010. 9. 14. 17:56

음악가 이기전에 그의 평생 본업은 캐토릭 신부였다.머리색이 특이하게 붉은색이 짙어 생존시엔 빨간머리 신부님이란 닉네임이 붙어 다녔다.

성직자의 본업을 훌륭히 해나가 면서도 근대 바이얼린 협주곡의 기초를 만들어놓은 훌륭한 음악가 였다 독일의 요한 세바스찬 바하와 거의 몇년 차이나지 않는 동시대 인물로서 17세기 후반 부터 18세기 초두에 걸쳐 이탈리아의 명 봐이얼린연주가겸 자곡가 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수도원 에서 열심히 수도 도 했지만 1713년 베니스에서 돌아온후로는 피에타 음악원 에서 세상을 떠날때 까지 종신 관리하며 불우한 소녀고아들의 교육과 더불어 특히 음악 교육에 온 정열을 기우렸다

그가종신 근무한 피에타 음악원 이란 그당시 사회에서 버려진 사생아들 중에서도 여아 들로만 구성된 보육원 이였다

그의 유명한 사계등 그의 음악이 주로 현악기 위주로 맑고 깨끗하며 연주 하기에도 비교적 쉬운 음악이 많은 것은 어린 소녀들의 맑은 심성을 카워주기 위한 뜻도 서려 있어 유독 그의 작품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느곡이 비교적 많다

그는 많은 협주곡을 썼다.79곡의 봐이얼린 협주곡 18개의 봐이얼린 소나타. 2개의 봐이얼린과 첼로를 위한 3중주곡.12개의 첼로를 위한 3중주곡 등이 있으며 65개의 협주곡,38곡의 오페라등 많의 양의 작품을 남겼다 그자신이 명 봐이얼린 연주가 였기에 그만의 독특 하고 화려한 어려운 기교등이 곡 가운데 잠재 된것도 고아 소녀들을 위한곡 외에도 꽤 많이 있다.

 

그의 전문가 들을 위한 작품은 완벽에 가까운 형식인데 음악의 아버지라 일컷는 바하도 그를 흠모하여 비발디의16개의 봐이얼린 협주곡을 클라비어 독주곡과 오르간 곡으로 고쳤다 그리고 4개의 합시코드 협주곡 으로도 편곡을 했으니 그의음악 세계를 짐작 할수 있으리라.

 

 

프로필2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 상 마르코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큰 지진에 놀라는 바람에 칠삭둥이로 태어났다는 그는 어 릴 때부터 시름시름 앓으면서 간신히 성장했다고 한다. 당시 이탈리아의 3대 음악 명문 중 한 집 안 출신답게 비발디는 소년 시절부터 바이올린 지도를 아버지에게 충분히 받았고, 이것이 나중에 그가 바이올린의 대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었다.


15세 때 삭발하고 하급 성직자가 된 비발디는 25세 때 서품을 받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 고 그해 9월 베네치아의 피에타 여자 양육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취임했다. 이 양육원은 여자 고 아들만 모아 키우는 일종의 고아원으로 특히 음악 교육에 중점을 두던 곳이었다. 비발디는 이곳 에서 실기 지도는 물론 원생들로 구성된 피에타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아 했으며, 그들을 위해 여 러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비발디의 음악이 대체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다소 나약하다는 평을 듣 는 이유가 이 당시 여자아이들을 위해 쓴 곡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근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 방법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을 듣는 그는 79개의 바이올린 협주 곡, 18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12개의 첼로를 위한 3중주곡 등 수많은 곡을 썼다. 뿐만 아니라 38 개의 오페라와 미사곡, 모데토, 오라토리오 등 교회를 위한 종교 음악도 많이 작곡했다.


허약한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창작 활동을 한 비발디는 자신이 명바이올리니스트였던만 큼 독특하면서 화려한 기교가 담긴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만들었고, 이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페라의 흥행 사업에 손을 대고, 여가수 안나 지로와 염문을 뿌리는 등 그가 사제로서 의 의무를 충실히 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자만심이 강하고 낭비벽이 심했 던 그의 성격도 갖가지 일화를 남겼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의 빈축을 사 고향에서 쫓겨나다 시피 한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객사해 그곳의 빈민 묘지에 묻혔다.


비발디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전 유럽에 이름을 날렸으며, 생전에는 작곡가로서보다 바이올리 니스트로서 더욱 유명했다. 비발디 자신은 작곡가로서 더욱 알려지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당시 골도니라는 비평가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비발디는 바이올린 주자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사제로서는 영점이다." 비발디는 워낙 작품을 많이 썼으므로 사실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곡들이 여러 곡 있기는 하다. 훗날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그에 대해 '똑같은 곡을 100곡이나 쓴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크 음악의 대들보라고 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7세 연상인 비발 디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의 현악 합주곡 몇 곡을 건반 악기용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크 음악 연구와 감상이 활발해진 오늘날 비발디는 코렐리, 바흐, 헨델의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 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시와 음악사랑
글쓴이 : 시와음악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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