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이야기/밴드 이야기

홍대 앞을 세계 인디밴드의 메카로

즐락지기 2011. 10. 6. 15:45

홍대 앞을 세계 인디밴드의 메카로

 

美 인디밴드 한국 무대에 올리는 공연기획자 션 메일런
D.I.Y.투어 "외국 인디밴드 공연할 때 우리 집에서 숙박 해결경비 절약할 수 있어
"K팝 인기를 인디밴드로 홍대 앞에서 美 인디밴드 소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도 "한국 밴드의 뮤직비디오 유튜브로 열심히 알릴 것"

 

작년 말쯤부터 서울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 미국인이 외국 인디밴드들을 한국에 데려와 공연하는데 관객은 모두 외국인이다.

그리고 외국 밴드 멤버들은 이 미국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기획하는 공연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그의 인터뷰가 실렸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나 한국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도 있다"며

"한국에도 미국의 인디밴드가 소개되고 있고 한국 인디음악도 꽃피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 홍대 앞 문화의 에너지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끌어모아 거대한 용광로에서 녹인다. 2006년 한국에 온 미국인 션 메일런은 한국과 미국의 인디밴드 내한 공연을 전문으로 열어온 공연 기획자다. 그는 "강남의 댄스클럽보다 홍대 앞 라이브클럽이 훨씬 좋다"며 "한국 음악을 세계에 알릴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홍대 앞 거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뉴스의 주인공인 션 메일런(30)을 지난 20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8년 초 자신의 밴드

'사이보그(Ssighborgggg)'의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의 덜 알려진 뮤지션들을 한국에 데려온

그는 2009년 6월 '수퍼컬러수퍼(SuperColorSuper)'라는 공연기획사를 만들어

한국과 외국 뮤지션의 공연을 꾸준히 열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한국에 정말 좋은 밴드가 많은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 충분히 활동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인디밴드들은 지방에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일본 투어를 해본 내가 그들의 공연기획을 하게 됐다.

나는 한국의 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본 한국밴드들은 투어를 누구와 어떻게 할지도 잘 몰랐고, 장래에 대한 계획도 없어 보였다.

나는 이들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마저 느낀다."

―책임감이라니.

"물론 내가 뭘 잘못해서 책임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방에 가면 내가 기획하는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 관객들은 '수퍼컬러수퍼'를 '메시아'라고 부른다(웃음)."

―그들은 대개 외국인인가.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관객도 많다. '모그와이(Mogwai)' 같은 스코틀랜드 밴드의 공연을

보려고 항공료만 60만원씩 들여서 일본까지 갔다 오는 한국 팬도 있다. 그렇지만 11월 30일에 한국에서 이들

공연을 6만6000원으로 볼 수 있다."

―'수퍼컬러수퍼'는 무슨 뜻인가.

"'수퍼'는 '최고'의 의미로, '컬러'는 '다양성'의 의미로 따왔다. 그냥 '수퍼컬러'라고 지으려니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수백만 건이 검색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수퍼'를 하나 더 붙였다."

션은 2006년 영어강사로 처음 한국에 왔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인근에서 나고 자란 그는 UC샌타크루즈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른 곳이 한국이었다.

―학원 강사는 얼마나 했나.

"1년간 하고 그만뒀다. 너무 지루했다. 아마도 미국인에게 한국의 영어강사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직업'일 것이다.

뇌가 멈추는 것 같았다. 학원은 교육보다는 '백인' 그 자체를 원했다. 나는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 비즈니스를 하게 된 건가.

"1년 뒤 미국에 돌아갔다가 7개월 만에 돌아왔다. 수험서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음악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한국 인디음악계 친구들을 사귀었다. 도쿄에서 매주말 엄청나게 많은 외국 밴드 공연이 열리는데

그들이 서울에 들르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지내던 미국 밴드를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관객이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엔 관객이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차츰 한국 관객이 늘었다. 특히 '라운드 로빈(Round Robin)'이란

공연 형식을 도입한 뒤로 한국 관객이 부쩍 늘었다."

―'라운드 로빈'이 뭔가.

"공연장 중간에 객석을 만들고 전후좌우 네 곳에 밴드 네 팀을 배치한다. 그리고 밴드들이 돌아가면서 공연하는 것이다.

이런 공연은 덜 유명한 밴드를 소개할 때 특히 좋다. 이런 공연을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청주에서도 했다."

―외국 밴드들을 집에서 재웠다던데.

"(웃음) 그렇다. 다들 내 친구들이거나 또는 그런 것을 이해하고 즐기는 인디밴드들이다. 우리 집은 지하철 대림역

근처인데, 이들에게 '경비 절감 때문에 그런데 괜찮겠느냐'고 하면 흔쾌히 동의했다. 이게 사실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밴드들의 투어를 'D.I.Y(Do It Yourself) 투어'라고 부른다. 가는 도시마다 친구 집에서 묵으면서

공연하는 거다. 그렇지만 나와 개인적으로 잘 모르거나 '호텔 숙박'을 원하는 팀은 원하는 대로 해줬다."

2008년 초 자신의 첫 공연을 필두로 그가 지금껏 치른 공연은 110회가 넘는다. 그는 한국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주로 하면서 2~3개월마다 한 번씩 외국 밴드를 초청해 내한무대를 연다. 한국의 공연기획사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외국 인디밴드 내한공연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는것이다.

―K팝의 대유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내가 K팝을 잘 모른다. 나는 미국 음악 중에서도 팝은 잘 안 듣는다. K팝은 뮤직비디오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다.

 K팝이 외국에서 주목받으면 한국의 밴드 음악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왜 그렇다고 보나.

"나라도 K팝을 접하면 '이것 말고 한국 음악에 뭐가 또 있지?'하고 찾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에게도

 K팝을 접한 미국 친구들이 한국 밴드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문의가 온다. 그러면 나는 한국 인디밴드들을 추천해 준다.

이건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뒤에 K팝이 그 뒤를 따르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나.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 대해 아는 건 영화 '치그를치크라' 밖에 없었다. 그 영화를 자막으로 보면서

한국말을 처음 들어봤다. 그 영화는 정말 최고다. 타란티노 영화와 비슷하다. 코미디와 호러, SF가 뒤섞여

있으면서도 슬프다. 그 영화 때문에 내가 도쿄나 상하이 대신 서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치그를치크라'는 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다. 그는 "그 외에도 '괴물',

'올드 보이', '마더', '시' 같은 영화가 '6.25 전쟁'과 '남북분단'이란 한국의 이미지를 만회시켰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인디밴드 공연만 하는 이유가 있나.

"나는 한국에 없는 분야를 채우고 싶다. 유명한 밴드 내한공연을 두고 다른 기획사와 경쟁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라디오헤드(세계 최고 인기의 영국 밴드) 공연은 꼭 해보고 싶다. 라디오헤드는

정말 엄청난 밴드이지만, 그 근본이 인디이기 때문이다. 그런 유명한 밴드를 데려와 큰 공연장에서

입장료 5만~7만원에 공연하는 게 내 꿈이다."

션 메일런은 홍대 앞의 이름난 음악바 '곱창전골'의 단골이며, 강남의 댄스클럽보다는 홍대의 라이브클럽을

 더 좋아했다. 그는 인디 록밴드 '비둘기우유'가 유명해지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그는 피부색만 다를 뿐, 홍대 앞 젊은 뮤지션들과 똑같았다. 그는 "앞으로 한국 밴드들의 뮤직비디오를 잘 찍어서

유튜브를 통해 미국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