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팝의 거장, 이글스 첫 내한공연
이글스는 보편성의 밴드다.
컨트리와 록을 결합시킨, 가장 미국적인 음악을 들려주지만 그들은 그 ‘미국적인 것’에서 대중음악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을 이끌어냈다.
1971년 LA에서 결성된 그들은 1972년 [Eagles]로 데뷔했다. 당시까지 록은 청년문화의 상징과 같은 음악이었다.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들은 자극과 혁신을 추구하며 기성 문화에 대해 도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록에 손사래를 치던 기성 세대를 끌어들였던 게 이글스였다. 컨트리와 포크, 그리고 편안한 창법과 여유로운 멜로디는 그들의 사운드를 규정짓는 요소였다.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 ‘순한’ 음악을 거부할 이유는, 기성세대에게도 없었다. 그들에 의해, 저항의 상징었던 60년대의 록은 70년대로 넘어오면서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일억 이천만장 이상의 음반을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보편성때문만이 아니다. 사이키델릭으로 촉발된, 대중 예술로서의 록이 가진 쾌감을 그들은 또한 잃지 않았다. 거대한 스케일과 비장미로 지금까지도 이글스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수많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이 도달하고 싶은 어떤 경지의 상징인 ‘Hotel Califormia는 이를 증거하는 6분 29초의 시간이다.
이글스는 공연의 밴드이기도 하다. 데뷔한지도 40년, 그들이 낸 앨범은 그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단 일곱장. 그 중 여섯장은 모두 70년대에 발표했다. 그 기간동안 자신들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 그 후의 시간들은 그 노래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재현하는 나날이었다. 그들에게 성공을 안겼던 주된 계층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글스의 공연장에서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앨범 록의 시대를 음미해왔다.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고 창작력이 절정이 되었을 때, 물러난 그들의 전성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세대는 이글스의 공연장에서 자신들이 누렸던 경험들을 공유했다. 뒤늦게 이글스를 알게 된 세대는 뿌리를 찾는 시간을 나눴다. 혈기왕성했던 나이에도 결코 혈기에 의존하지 않았던 이글스였기에, 체력과 기량을 앗아가는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앨범에 담긴 순간들을 계속 되살릴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공연에 실망이 거세된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그토록 오랫동안 술집에서 이글스의 노래를 듣고, 그토록 반복해서 ‘Hotel Califormia를 카피하던 시간을 보상받을 때다.
그들이 거쳐왔던 수많은 나라들의 관객이 느꼈을, 격조있는 절정을 공유할 바로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신인이되 신인답지 않았다. 이미 린다 론스태트의 백 밴드로 활동할만큼 탁월한 연주 실력을 가진 이글스였다. 후, 롤링 스톤즈의 프로듀서였던 글린 존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가 이 앨범을 만드는 시간은 3주도 안걸렸다. 레드 제플린과 작업한 이후로 내가 그렇게 열광한 적이 없던 것 같다.” 글린 존스만 열광한 게 아니었다. 이 앨범에서는 ‘Take It Easy등 총 세곡이 빌보드 차트 30위안에 올랐다. 골드 레코드(100장 이상 판매)를 획득하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글스에게 서툴렀던 시절은 결코 없었다.
ㆍ[Hotel California] [Eagles]앨범은 현재 전세계에서 북미(미국, 캐나다) 2곳만 음원서비스 중이며,
조속한 국내 음원서비스를 위해 권리사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2집 [Desperado]의 상대적 부진이후 이글스는 밴드의 노선을 컨트리 록으로 결정한다. 그 후 발표한 두 장의 앨범들은 다시 데뷔 앨범 시절의 상업적 성공들을 견인했다. 4집
ㆍ[Hotel California] [Eagles]앨범은 현재 전세계에서 북미(미국, 캐나다) 2곳만 음원서비스 중이며,
조속한 국내 음원서비스를 위해 권리사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1979년 [The Long Run]이후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들은 새앨범없이 달려왔다. 투어만 해도 3대에 물려줄만한 유산을 계속 벌 수 있을 것 같았던 이글스가 새 앨범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투어의 ‘약빨’이 떨어졌나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제작 기간 6년, 그 시간동안 이 록의 장인들은 한 땀 한 땀 음악을 만들고 녹음했다. 그리고 뚜껑이 열렸다. 발매 첫 주 1위에 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체적으로 세운 레이블, 즉 인디 레이블에서 내놨다는 건 성공적 귀환에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그 전의 앨범들과는 달리 한 곡의 히트 싱글도 내지 못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앨범에 담겨있는 원숙한 사운드는 70년대의 ‘좋았던 시절’을 아름답게 반추하게 된다. 스튜디오에서의 기량과 감각을, 그들이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혁신은 없다. 하지만 재현만으로도 이글스는 그들이 왜 이글스인지를 일곱 번째 앨범으로 웅변했다.
출처 : 간지 http://kanzi.mnet.com
'우리네 이야기 > 음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시봉·김광석은 추억복고가 아니다 (0) | 2011.03.09 |
---|---|
해외 팝스타들 내한공연 붐..배경은 (0) | 2011.03.04 |
성공한 뮤지션 뒤로 자리잡은 박진영 ‘표절 논란의 역사’…1995년부터 현재진행형 (0) | 2011.02.16 |
‘아이돌’ 울린 ‘쎄시봉 콘서트’, 무엇을 남겼나 (0) | 2011.02.15 |
한국 다시 온다던 게리 무어 영원히 작별 (0) | 2011.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