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30분 전 런던을 떠났습니다. 비틀스 주변 온도는 32도(화씨)였습니다." 미국 방송들은 마라톤 중계하듯
이들의 움직임을 전했다. 비틀스는 뉴욕 케네디공항에 도착해 대형 영국 국기를 앞세우고 비행기 트랩을 내렸다.
▶비틀스가 출연한 TV 쇼가 방송되는 동안 미국 주요 도시에선 범죄가 한 건도 신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해 4월 미국 가요 톱 100곡 중 1~5위는 비틀스 음악이었다. 몇 달 후 비틀스가 다시 미국 순회 공연을 갔을 때는
그들이 묵었던 호텔 방 이불과 베갯잇, 심지어 목욕물을 사겠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비틀스 미국 공연은 세계가 팝 음악을 통해 하나의 문화권이 됐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5년 후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서울에 왔다. 그가 대표곡 '더 영 원스'를 부르는 순간 수많은 꽃송이와 손수건,
선물이 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80년 레이프 개럿 열풍에 이어 92년 뉴키즈온더블록 내한 공연 때는 흥분한 청중이
무대로 몰려드는 바람에 사람이 깔려 죽는 사고까지 있었다.
1만4000여명의 젊은이를 불러 모으는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유럽 젊은이들은 태극마크가 박힌 머리띠를 두르고,
한글이 새겨진 셔츠를 입고, 한국인도 읊조리기 힘든 랩 가사를 줄줄이 따라 불렀다. 르몽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중국에 끼인 것으로만 알려졌던 나라,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로만 알려졌던 나라가 이제 문화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고 썼다. 노래 실력에 더해 뛰어난 춤 솜씨와 외모가 유럽 젊은이를 홀린 힘이라고 한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전시(戰時)체제를 이유로 댄스홀 영업을 금지했다. 한국의 대중연예인들은
"서양 어느 문명 도시에든 있는 댄스홀이 조선에만 허락되지 않는 건 통탄할 일"이라며 "서울에 댄스홀을 허하라"고
요구했다. 양식(洋食), 양복(洋服), 양옥(洋屋) 같은 단어에서 보듯 오랫동안 우리에게 '서양'이란 '새롭고 멋진 것'과
동의어였다. 그 서양 문화의 심장과 같은 파리에서, 서양이 고향인 팝 음악을 갖고, 한국의 대중가수들이
'내 자리 내놓으라'고 당당히 소리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