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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기타가 있는 수필’, 그 안에 담긴 처연함

즐락지기 2010. 12. 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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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기타가 있는 수필’, 그 안에 담긴 처연함

‘기타가 있는 수필’. 김창완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이다. 1983년 가을에 발표되었다. 김창훈과 김창익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산울림이 김창완 1인 체제로 개편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앨범은 그간 산울림의 흔적들과는 거리가 먼 포크 앨범이다. 기타와 목소리 하나만 두고 다른 것은 텅 비워버렸다.
산울림에서 힘차게 소리 지르는 김창완과 나지막히 읇조리는 이 앨범의 김창완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이중적이다. 수록곡 중 ‘어머니와 고등어’는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는 유명한 노래다. 하지만 앨범 전체로 본다면 매우 이질적인 곡이다. 이 앨범의 중심은 무시무시한 비관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들은 대부분 사랑에 관한 것이다.
“밤하늘에 무지개 피고 솜털처럼 고운 이 밤에” 사랑해 라고 고백하는 노래(‘초야’)이거나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 부르고 픈 이름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노래(‘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들이다.

 


문제는 가사대로 순순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초야’에서 사랑한다는 멜로디가
심각하게 플랫되어 있음을 명심하자. 원래 가창력이 뛰어난 뮤지션은 아니지만 이건 거의 의도
적인 왜곡이다. ‘그대여’는 아무렇게나 반음이 내려간 채로 끝까지 이어진다. ‘나는 기다리네’는
기타 반주까지 아예 바닥을 친다. 무덤 속에서 부르는 귀신의 노래가 분명 이럴 것이다.

 


기타와 목소리뿐이라는 점에서, 개성이 뚜렸한 포크라는 점에서, 김민기나 조동진과의
비교가 가능하다. 김민기가 현실의 서정을 이야기했고 조동진이 시적 심상을 노래했다면
김창완은 부질없는 현실에 한 톨도 뜻이 없음을 노래한다.
‘봉우리’처럼 내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는‘꿈’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한 구절, “평생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할지라도”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예쁜 성에 사는 공주와 활 쏘는 왕자의 사랑이야기는 이 구절로 인해 막막한 우주 속의 이야기
가 되어 버린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못하리라는 행간을 만들어 낸다. 희망이란
전혀 없는 세계. 그래서 무시무시하다. 


 

상식적으로 이런 불온한 상상력은 불온한 시대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독재와 새로운 독재, 폭력과 비상식으로 점철된 역사 한 복판에 발표된 앨범이니까.

김창완은 불온한 시대를 무기력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던 바있다. 이 앨범은 무기력한 시대의 무기력한 개인의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절망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비관주의가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결국 이런 정서는 산울림의 파격과도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산울림의 샤우팅과 이 앨범의 처연함은 삶과 죽음처럼 묶여버린다. 그래서 김창완은 아직까지 청춘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삶과 죽음, 근본적인 형이상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그 둘 중에 이 앨범은 분명 죽음의 편이다. 산울림이 그랬듯이 김창완 역시 한국대중음악의 평지돌출이다.

 

 

 

 



출처 : 간지  http://kanzi.mnet.com